남상호 소방방재청장

태풍이 지나간 후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수 백 년 된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진 사진들이 어김없이 실린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아름드리 거목들이 태풍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후 풀잎을 보라, 풀잎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대로 휘어지면서 자신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바람에 적응한 것이다.

태풍은 그 자체로는 재난이 아니다. 가지고 태어난 자기 본성에 따라 더운 지방의 열을 추운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다.

최근 12호 태풍 ‘짜미’의 영향으로 아시아 곳곳이 물바다가 됐다. 필리핀을 강타해 마닐라는 도심의 60%가 침수됐고 이재민이 125만 명이나 발생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태풍 ‘솔릭’으로 중국에선 300여 명의 사상자와 700여만 명의 이재민이 고통을 받았다.

앞으로도 가을철 태풍이 평년(10.8개)과 비슷한 9~12개 발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1개 정도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동안 수많은 태풍을 경험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태풍은 너무나도 익숙한 자연재난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종종 우리의 경각심을 무디게 만든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만약 태풍이 온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진 후 부족하거나 불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대비해 두어야 한다.

우선 태풍이 예보되면 기상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라디오, TV, 인터넷, SNS 등을 통해 기상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태풍 경보가 발령되면 건물의 간판과 위험시설물 주변으로 걸어가거나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외출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문과 창문을 잘 닫아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안전을 위해 집안에 머물도록 한다. 강풍이 분다면 낡은 창호는 강풍으로 휘어지거나 파손될 위험이 있으니 미리 교체하거나 창문을 창틀에 단단하게 고정시켜 틈이 생기지 않도록 보강해야 한다. 또 테이프를 붙일 때는 유리가 창틀에 고정되도록 해 흔들리지 않게 하고 안전필름 등을 부착하여 파손을 예방해 파편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대부분 창문 밖에 서터를 설치해 강풍을 예방하고 비산방지용 투명필름을 창에 붙이는 등 건물 신축부터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창문 밖에 바람막이 서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해 봄직하다.

한편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태풍의 발생빈도와 강도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 대책은 지역별 강수량에 맞는 시설물과 구조물을 사전정비하고 국민행동요령과 대피소 등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태풍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태풍과 싸워 이기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할 때처럼 미리 준비하고 풀잎같이 자연의 본성을 닮아 유연하게 대처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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