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A 50年史, 줄거리가 될 스토리 ⑥


1974년 1월 8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 1호(개헌논의 금지)와 2호(비상 군법회의 설치)를 선포하였고 같은 달 14일에는 국민생활안전을 위한 3호를 선포하였다. 2월 22일에는 해군함이 통영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158명이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3월 28일에는 동해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다.

4월 3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 4호(민청학련 관련 활동 금지)를 선포하였고 6월 28일에는 해경의 초계정이 북한 군함에 피격되어 침몰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편 8월 15일에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저격 미수 사건이 벌여졌는데 이 사건으로 영부인 육영수가 피격되어 사망하였고 범인 문세광을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같은 날에는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이어지는 서울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8월 20일에는 박종규(朴鍾圭) 대통령 경호실장이 사임하여 차지철(車智徹)의원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10월 19일에는 대통령 저격범 문세광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12월 20일에 집행되었다.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였고 11월 3일에는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7층짜리 건물 대왕코너(현, 롯데백화점)에서 조명등의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사고로 88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1월 22일에는 미국의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이 방한하였고 12월 26일에는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내외적 갈등을 겪던 동아일보는 광고주들의 집단적인 광고 해약사태를 겪었다.

1975년 3월 18일에는 동아일보사의 114명 기자가 해고되면서 광고해약사태가 종결되었으며 4월 8일에는 대통령이 긴급조치 7호(고려대휴교령 및 군대투입)를 선포하여 고려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후 5월 13일에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여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과 반대 및 개정을 금지하였고 이에 반발한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5월 22일, 반대시위를 벌였다. 6월 30일에는 국방부가 전투예비군부대를 창설하였다.

한편 9월 1일에는 서울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이 착공 6년 만에 준공되었고 같은 달 22일에는 민방위대 발대식이 열렸다. 10월 14일에는 수원과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와 강릉과 동해시를 잇는 동해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11월 20일에는 대구의 서문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1900여개의 점포가 소실되었으며 12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전면개각을 단행하고 최규하(崔圭夏)를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1976년 3월 19일에는 항만청이 신설되었고 7월 1일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 발족됐다. 8월 18일에는 판문점에서 북한군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져 판문점 내에서 미군 2명이 살해되었다. 10월 2일에는 건설부가 경기도 반월에 공업도시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10월 27일에는 안동 다목적댐이 준공되었다. 12월 10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적십자사 실무회담이 개최되었고 12월에는 이해 수출 80억 달러가 달성되었다.

1977년 3월 9일에는 미국의 지미 카터(Jimmy Carter)대통령이 주한미군을 4~5년 내로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3월 16일에는 치안본부가 검인정교과서의 부정사건을 발표하였다. 5월 4일에는 문화공보부에서 일본《요미우리신문》의 서울지국을 폐쇄하고 해당 신문의 국내 배포를 금지하였다.

6월 1일 한국은행은 새로운 5000원권을 발행하였고 같은 달 19일에는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기인 ‘고리(古里)원자력 1호 발전기’가 초임계(初臨界: 원자로의 점화)에 도달하였다. 11월 11일에는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정차 중이던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운송열차가 폭발하였는데 이는 열차 호송원이 열차 내에서 촛불을 키고 잠들었다가 열차에 적재된 다이너마이트 22톤 등의 화약상자로 불이 옮겨 붙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12월 17일에는 대구와 마산을 잇는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같은 달 22일에는 수출 100억 달러가 달성되었다.

1978년 1월 1일에는 동력자원부가 신설되었고 3월 1일에는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긴급조치 관련 수감자들이 3·1절을 맞아 기념 시위를 벌였다. 3월 7일에는 한·미 합동의 팀스피릿 78 작전이 개시되었고 4월 21일에는 대한한공의 여객기가 소련 무르만스크 호수에 강제로 착륙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이틀 후인 23일에 탑승자 전원이 송환되었다.

4월 30일 정부는 12해리 영해법을 공포하였으며 5월 26일에는 여천 석유화학공단이 준공되었다. 7월 20일에는 고리원자력 1호 발전기가 준공되었고 9월 26일에는 국산 유도탄 시험발사에 성공하였다. 10월 5일에는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고 11월 7일에는 한미연합사령부가 발족됐다.

한편 12월 12일에는 제10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어 야당인 신민당이 득표율에서 여당인 공화당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타났으며 같은 달 27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79년 1월31일에는 삼척과 포항을 잇는 동해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고 4월 8일에는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충주에서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를 발굴하였다. 6월 29일에는 카터(Jimmy Carter)대통령이 방한하였으며 8월 9일에는 가발제조업체인 YH무역의 폐업 공고에 반발한 근로자 200여명이 마포구의 신민당사에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이후 11일에는 1,000여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있던 근로자와 취재진, 국회의원을 폭행 및 강제연행하면서 강경진압에 나섰고 그 결과 노조 집행위원장인 김경숙이 사망하고 10월 4일에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었다. 10월 18일에는 정부가 학생시위가 활발하던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공포시켰다. 10월 26일에는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피살한 ‘10·26사태’가 발생하였고 다음날인 27에는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하는 동시에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후 12월 6일에는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최규하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달 21일에 취임했다. 12월 22일에는 김재규 등 7명이 육군보통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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