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 作

제2부 한 여인의 인생을 참담히 짓밟은 짐승들 (22)

한 시골 경찰서에 엄마와 아들이 함께 구속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법에도 정상참작이란 게 있어 설사 공범이라도 부자 간, 모자 간, 형제 간, 부부 간에 한 명은 대개 불구속 수사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순박한 한 소녀의 인생을 짓밟은 ‘강간’이라는 강력사건의 의심을 받고 있는 용의자 가족이라는 점이 모자 동시구속 요인이 된 것 같다. 특히 피해자 아버지가 자살까지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란 옛말처럼 어떻게 하든지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 3일 후 숙희네 집으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형사 = 김숙희 양 어머니 되십니까?
송산댁 = 예. 제가 걔 어민데요.

형사 = 그럼 뭐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숙희 양이 사고를 당한 그 얼마 후에 누가 검은 비닐봉지에 돌을 메달아 그 속에 협박편지를 마당에 던진 일이 있었지요?
송산댁 = 예. 그런 일이 있었어요. 왜요?

형사 = 그럼 그 협박편지 내용 혹 기억나십니까?
송산댁 = 그럼요. 그것을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겠어요. 만일에 이번 일 경찰에 신고하면 이 집에 불을 확 질러 버리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 남편도 그 협박장 때문에 더 큰 불안과 충격으로 자살하게 된 거라고요.

형사 = 그럼 혹시 그 협박장 없애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나요?
송산댁 = 아마 아이 아버지가 어디 보관해두었을 거예요.

형사 = 예. 급히 그 협박장 찾아서 연락 좀 주세요. 그것만 있으면 숙희 양 사건 진범을 잡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이렇게 오고 간 전화 통화에 숙희 엄마 가슴에는 또다시 북소리가 쿵쿵 울렸다. ‘그래. 그 종이쪽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것을 받아 읽어보던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던 모습이 뚜렷하게 생각났다.

한참 후 정신을 가다듬은 송산댁은 남편이 생전에 사용하던 아랫방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책상서랍에는 없다. 몇 권의 소설책과 농민신문, 그리고 이런 저런 문서가 가득 담긴 종이 박스를 열어젖혔다.

또다시 송산댁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때 저쪽 사설감방에 누워있던 숙희가 고함을 지른다.

“엄마, 나 죽어! 엄마 날 좀 살려줘! 엄마!”

그 소리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딸이 갇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배가 남산 같이 불러온 숙희의 모습은 처절하게 보였다. 입에는 거품이 물려 있고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갈고 있는 딸아이의 눈에는 푸른빛이 무섭게 감돌았다. 정신병원의사의 말이 언뜻 생각났다. 아무리 정신이 나간 병자라도 하루에 한두 번은 제 정신이 든다는 말이었다.

“그래 숙희야. 이것아 엄마 왔어. 왜 배가 아파?”
“응응. 배가 찢어질 것 같아. 엄마!!”

그러고 보니 숙희의 산달임을 송산댁은 깜빡 잊고 있었다. ‘어쩌면 좋아 이 일을…’. 이미 양수가 터졌다. 큰방으로 달려가 학교에 근무하는 친정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히 산부인과 의사를 데리고 좀 와달라고.

그런데 동생이 학교 학생들 시험기간이라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송산댁은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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