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근로자 김구원 씨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한국직업전문학교, 이곳에선 올해부터 산재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지원 하에 산재근로자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컴퓨터, 인터넷 등 IT강좌가 개설 된 것.

산재를 딛고 새로운 삶을 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산재근로자들이 수강생이다 보니 이곳의 강의 분위기는 여느 직업전문학교와는 확연히 다르다.

강사와 수강생 모두에게 열의를 넘어선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 배움을 통해 다시 일어서려는 학생과 이런 학생들의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야 하는 선생님이 만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통해 다시 비상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산재근로자 김구원(43)씨를 만나봤다.

과로로 쓰러져

 

때는 2008년도. 김구원씨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모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보이스레코딩 기계와 MP3 기기 등 소형 가전기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성실한 직원이 많았고, 제품의 품질 또한 우수해 1986년 창립 이래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경부터 시작된 경기침체와 잇딴 글로벌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이 작은 회사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회사의 열악한 자금 사정을 알게 된 협력사들이 자재의 납품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산에 차질까지 빚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재파트 담당자였던 김구원씨는 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창립 멤버로 이곳에 청춘을 다 바친 그였기에 이렇게 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회사 밖에선 백방으로 협력사를 찾아다니며 자재의 납품을 부탁했고, 사내에선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으려 생산직원들을 독려했다.

휴일 근무는 물론 끝이 없는 야근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안팎에서 쏟아지는 스트레스는 그를 점점 더 힘겹게 했다. 그렇게 2년여가 흐른 2008년 3월 19일, 결국 그는 회사에서 쓰러졌다.

뇌출혈로 회사 퇴사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 그의 병명은 뇌출혈로 판명이 났다. 원인은 역시 과로였다. 의사는 그의 어머님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전했다.

부모님과 동료 근로자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그는 수술에 앞선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를 받는 동안 그리고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그와 그의 부모님은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정밀검사결과는 희망적으로 나왔다. 뇌출혈의 정도가 심하지 않았고, 응급조치도 빨리 이루어져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최종 진단이 나온 것.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그는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뇌출혈을 겪은 그의 몸은 예전 그 몸이 아니었다. 감각과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졌고, 운동 신경도 많이 약화됐다. 즉 회사에 복귀를 해 예전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더 이상 그에겐 없었다. 이대로 가면 가뜩이나 힘든 동료직원들에게 폐만 끼칠 터, 어쩔 수 없이 그는 젊음을 다 받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희망은 내가 만드는 것”

성실히 치료에 임하여 입원 3개월여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몸도 꽤 건강해졌고, 다시 일을 하겠다는 의욕도 넘쳤다. 하지만 청년 실업자만도 수십만에 달하는 현 고용상황에서 어느 덧 마흔을 넘긴 그가 다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패가 계속됐고, 그는 점차 지쳐갔다.

그러던 중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직업전문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산재근로자 직업훈련과정을 알게 됐다. 부족한 능력을 보완한 후 다시 취업에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이에 그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직업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학교에는 자신과 같은 산재근로자들이 많이 와있었다. 함께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서로를 격려해가며 새로운 삶을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김구원씨는 학원에서 워드, HTML 등 웹표준퍼블리셔 과정을 배우고 있다. 뒤늦은 공부가 벅찰 만도 하것만 그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으로 산재의 고통을 이겨냈듯 자신이 노력해야지만 새로운 희망이 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희망이 결실을 맺어 그가 다시 한 번 세상에서 비상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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