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국제 관계에서 아시아를 실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세계 평화를 확인할 수 없다”


“세계 경제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제 아시아의 시대가 돌아온다”와 같은 말들이 어렵지 않게 돌아다닌 지 꽤 됐다. ‘아시아’라는 단위는 과연 존재하는가?, 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왜 하나의 단위 안으로 묶여야 하는가? 도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기에 ‘아시아’라는 하나의 단위 안으로 같이 들어가는가?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보자.

2002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은 결국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는 테러와 보복의 끝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고, 인도네시아의 아체에서는 피의 살육이 벌어졌다. 인도에서는 몇 차례의 학살과 테러가 이어졌고, 파키스탄과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이 북한을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러한 비극이 모두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 왜 아시아일까?

아시아는 실질적으로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제국주의는 원활한 식민 통치를 위해 아시아 사회를 근대 사회로 변화시키는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혈통 중심·봉건 계급적인 사회 체제가 유지되었고 그러한 체제 안에서 기존의 기득권자들은 여전히 권력으로 남았다. 근대 사회가 형성되지 못하는 자리에 종교, 혈통, 지역, 언어 등의 집단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아시아는 여전히 봉건주의 속에 남아 있어 건전한 시민 세력이 성장하지 못하였다. 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에서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것은 이 봉건주의의 망령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그 통치의 원활함과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국민국가를 도입하였고 그 성립의 이데올로기로는 불완전한 민족주의가 자리 잡았다. 따라서 유럽에서와는 달리 정치적 단일체로서의 국민국가가 아닌 인종이나 종교의 측면에서 지배적 다수의 위치를 차지하는 일부가 주축이 되는 국민국가가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다수 민족과 종교 등이 국가 권력 형성의 기제로 작용하였다. 국가의 이름으로 소수의 인종과 종교가 탄압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독재자들은 대부분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인민들이 수십 년 동안 세뇌당해 온 이 국가주의의 망령으로부터 쉽게 헤어나지 못해 건전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는 미국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미국은 양극 체제에서 소련과의 끝없는 경쟁을 치렀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 사수를 절대절명의 과제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반공 이데올로기만이 유일한 관심이었을 뿐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 광주, 방콕, 자카르타, 마닐라 등에서 시민 의거가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수없는 양민들이 학살당했다. 그 학살들이 미국과 연계되면서 아시아는 더욱 반미의 점화지로 부상하고 있다.

90년대 양극 체제가 무너진 이후 유일한 슈퍼파워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아시아에 대한 패권주의가 노골화되었고 이에 대한 아시아의 반응은 반미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특기할 만 한 사실은 반미 운동의 중심에 이슬람 세력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중동의 석유 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끝없는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동에서 아랍인들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정당한 방법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 틈새에서 태어난 것이 종교를 통한 성전 이데올로기의 개발이었다.

그것이 결국 미국에 대한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미든 반미든 용미든 탈미든, 그 누가 그 어떤 입장에 서 있든, 아시아에서의 전쟁이 미국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국제 관계에서 아시아를 실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세계 평화를 확인할 수 없다. 평화 없는 세상, 전쟁과 테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삶, 인문의 삶을 꽃 피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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