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분야 유관기관 등 반대 목소리

 

지난 21일 국회도서관에서 산업안전보건기능 지방이양에 대해 각계가 토론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지난 3월 산업안전보건기능의 일부 기능을 지방으로 이양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해 대통령재가까지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 결정 이후 산업안전보건 관련 단체는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단번에 무너트리는 조치”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대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번 토론회에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한국안전학회, 대한산업안전협회, 대한산업보건협회, 한국산업간호협회,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 한국산업위생학회, 한국산업간호학회 등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대표적인 유관기관 및 학회가 모두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는 사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보니 실질적으로는 지방이양에 대한 규탄의 자리였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토론회는 산업안전유관기관, 업계, 학계 외에 환노위 및 주요 국회의원들까지 적극 나서서 지방이양에 대해 반대했다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있었다.

노사 의견 전혀 반영 안 돼

한국노총 정영숙 본부장은 이번 사안이 기본적으로 ILO협약에 위반되고, 노동단체와 단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차상의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방이양 항목을 세세히 분석하고 그 문제점들을 일일이 짚어가며 비판했다.

정 본부장은 “항목별로 지자체의 수행능력, 중복규제, 규제 완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라며 “강력한 법집행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인증, 안전보건기능, 사업주의 감독기능과 같이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기능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덧붙여 정 본부장은 “만약 업무가 지방으로 이양된다면 산업안전보건분야의 대혼란은 불가피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정부에 직접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존까지 반대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던 한국경영자총연맹 역시 이번 토론회에서는 지방이양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경총 류기정 사회정책본부장은 “회원사를 중심으로 지방이양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방이양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었다”라며 “기업들은 사업주 입장을 고려한 유연성있는 업무집행 등 긍정적 측면도 기대하나, 행정과 집행의 이원화 및 이중감독에 따른 폐해가 더 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라고 전제했다.

아울러 류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에는 이러한 인적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다”라며 “이양이 된다면 전문지식 없는 담당자가 관리하게 되어 산업재해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김은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안전보건 기능이 지방이양 논의 자체에서 배재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사업이나 업무의 특성상 광역적 기능, 전국적 통일성, 고도의 전문성이나 기술 등이 요구되는 사업은 지방이양 추진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라고 전제하며 “산업안전보건은 지방정부의 특성을 고려한 의제가 아니라 광역적이고 전국적인 통일성을 요구하고 있는 의제라는 점에서 지방이양 자체가 타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자 건강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 발생할 것

한국산업위생학회 백종민 회장은 산업보건 측면에서 지방이양의 문제점을 항목별로 제시했다.

백 회장은 “역학조사는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이 통상적이나 지방이양 계획을 보면 한 지역에 대해서만 하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또 지방에서 건강수첩을 발급하게 되면 사업장 이주 시 발급업무가 복잡해지고 비용적인 문제도 수반되어 결국 건강수첩의 취지가 퇴색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백 회장은 “지방이양 추진 업무 대부분이 규제 완화 및 업무의 복잡성을 가져와 산재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실효성과 합리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이번 지양건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을지대 갈원모 교수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갈 교수는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자체소재 사업장과 서울 등 수도권소재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의 차이가 확연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국 지자체간 형평성 문제로 이어져 일원화된 사업장 관리감독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라며 “여기에 열악한 영세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7천~8천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있는데, 지방에 이양되면 이러한 격차가 크게 벌어져 근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원종욱 교수도 산업재해가 은폐되는 경향 속에 지방으로 이양된다면 은폐되는 산업재해가 더욱 많아질 수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중앙정부 감독기능 오히려 강화시켜야

이날 참여한 각계의 대표 및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의 전문성 부분이었다. 대부분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성급하게 이양을 시키면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또 최근 산업재해가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해볼 때 오히려 중앙정부의 감독과 관리기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도 이날 나온 주된 의견이었다.

민주노총 김은기 국장은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화하여 좀 더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해야하고,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의 관리 및 감독 인력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더 나아가 안전업무의 전문성을 감안해 영국과 같이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할 국가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라고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한국노총 정영숙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경우 일시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산업안전보건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경총 류기정 본부장도 “우리나라 산업안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현행대로 중앙정부 체제로 산업안전보건 업무가 집행되는 가운데, 재해발생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기업규모별 특성, 안전관리수준을 고려한 예방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MSDS 업무 추가로 논란 더욱 커질 듯

이번 토론회는 그동안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경총과 국회의원들까지 반대 입장에 합류하면서, 지방이양 건에 대한 무게의 축이 최근 반대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정재희 교수는 “이번에 나온 의견들을 환경노동위와 고용노동부에 제출하여 지방이양에 대한 법안통과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라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언급했다.

또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강성천 의원도 “이날 나온 의견과 대응방안을 종합해 향후 국회 차원에서 지방이양의 부당성을 알리는데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듯 반대 입장이 대다수인데도 불구하고, 최근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기존의 7개 기능 25개 사무 외에 MSDS업무 등에 대한 지방이양도 추가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지방이양 여부가 결정될 내년 상반기까지 이에 대한 논란은 한 층 더 가열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
노동부유관기관노동조합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지부 윤갑동 차장

노동부유관기관노동조합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지부의 윤갑동 차장은 이번 토론회에서 지방이양의 부당성에 대해 각종 근거를 제시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갑동 차장이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제점1>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지난 8월 31일 소방방재청의 재난예방기능 등 5개 기능 22개 사무에 대해서 ‘현행존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재난이라고 하면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으로 구분되며, 법에는 인적재난이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지방분권촉진위는 이러한 기능 및 사무는 국가에서 책임을 지도록 결론내린 것이다.

문제점2> 지난해 지자체들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희망근로사업에서 총 5,334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재해율은 1.5%로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율의 두 배를 웃돈다. 물론 근로자의 연령대, 작업환경 등을 볼 때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 안전에 대한 제반요소가 중앙정부보다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항이다.

문제점3> 윤 차장은 안전인증제도가 지방이양될 경우 각 위험기계기구에 대한 안전기준의 통일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일한 제품이라고 해도 설계, 생산을 달리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규제를 지방자치단체 수만큼 반복해서 받아야 하는 불편도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점4>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은 재정적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각 지자체에 속해있는 대기업들이 규제완화를 요청할 경우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나 둘씩 기준이 완화된다면 결국 모든 피해는 산업현장 근로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점5> 안전보건관리대행기관 및 재해예방기관은 기본적으로 수익구조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대도시의 경우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만, 중소규모의 경우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지방이양이 이뤄질 경우 그 편차는 더욱 커져, 결국 서비스의 질이나 양에 있어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문제점6> 1990년과 1994년 지방자치단체로 산업안전보건업무를 이관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경우 ILO의 권고로 각각 1997년, 2000년 다시 근로감독기능을 중앙정부로 환원했다. 이들 나라 외에도 세계적으로 산업안전보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번 지방이양 건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윤 차장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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