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힌두 여성이 어른이 되면 주로 정장을 할 때 즉 공식적 자리나 의례를 나갈 때는 꼭 이마 한 가운데에 점을 찍는다. 빈디(bindi)라고 하는 이 점은 결혼한 여성은 원래 붉은 색으로 점을 찍었는데 붉은 색은 여성의 월경을 상징하는 색으로 임신 즉 생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졌다. 같은 의미에서 결혼한 여성은 검은 색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검은 색은 생산의 반대인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원래의 종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요즘은 일종의 패션 악세사리로 생각해 아주 다양한 색의 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모양도 물방울이나 다이아몬드 혹은 꽃잎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찍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사는 여성은 안 찍는 경우도 많다. 남성도 찍는 경우가 있다. 띨락(tilak)이라고 부르는 이 점은 예배와 같은 종교 의례를 할 때 반드시 찍는다. 힌두는 대부분이 하루를 시작할 때 반드시 목욕을 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목욕재계의 의미다. 목욕을 하고 난 뒤 집안에 있는 성소에서 아침 예배를 올리는데, 그때 빈디와 띨락을 찍는다. 성소가 집안에 없는 경우는 동네 사원으로 가서 예배를 올릴 때 빈디나 띨락을 찍는다. 외국인이 힌두 사원을 구경하러 가는 경우 브라만 사제가 일부러 오라고 해서 띨락을 찍어주거나 어떤 만찬이나 의례 하는 데 가면 환영의 뜻으로 찍어주기도 한다. 이 경우 힌두교를 믿든 믿지 않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소곳이 이마를 대고 띨락을 받는 것이 예의다. 남성들은 의례 이외의 일상생활 할 때는 거의 찍지 않는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악마는 항상 이마의 한 가운데를 공격해서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그 곳에 생명의 색인 붉은 빈디를 찍으면 악마가 공격을 할 수가 없다. 빈디는 악으로부터 보호의 개념도 가지고 있는데 그 보호라는 것이 결국 생명이고 그래서 곧 빈디는 다산 숭배의 개념의 산물인 것이다. 띨락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남성이 찍는 띨락의 경우 성자가 죽고 화장하여 남은 뼛가루를 찍어 바르거나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는 샌달 나무를 갈아서 그 가루를 찍어 바르기도 한다. 여성에 대해서는 보호의 의미가 강하고 남성에게는 보호의 의미와 함께 영적인 힘을 갖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다. 힌두교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갖는 두 개의 눈 외에 또 하나의 눈이 있다. 영적인 눈이다. 네팔이나 티베트에 가 본 사람들은 그쪽 불교의 탑에 보면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3의 눈이라는 것인데 이마 한 가운데 있다고 믿는다. 육체의 눈이 의미하는 바는 이성과 과학으로서의 소통이다. 그런데 이 제3의 눈은 육감으로서의 직관을 통한 소통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수준 높은 것으로 친다. 즉 이성이나 과학보다는 감각과 직관을 더 높이 치는 것이다. 객관화 된 다수의 시선이 아닌 주관적 소수의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전(秘傳)되는 시선 혹은 관점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 전통에 따르면 신과 그 신을 믿는 사람은 눈을 통해 접촉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믿는 자가 신을 보는 것이다. 이 때 그 신이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 드러낸다. 이를 다르샨(darshan)이라 한다. 결국, 다르샨은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대상 - 사람, 동물 혹은 어떤 오브제 혹은 어떤 자연물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가 없기도 하다 –의 내면에 있는 성성(聖性)을 보거나 그 대상이 자기의 성성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보는 것이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보여주는 것이다. 힌두-불교 세계관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성안(聖眼)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인간의 차원에서 다르샨을 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그냥 단순하게 보는 행위가 아니라 상(像)이나 이미지 혹은 그 대상을 알현(謁見)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학에서 널리 쓰이는 성현(聖顯. 히에로파니 hierophany)의 개념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힌두 세계관이 기독교 혹은 근대 세계관과 가장 다른 점은 이성이나 과학 혹은 근거나 통계 혹은 다수결과 같은 명쾌한 논리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감성이나 직관이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문화는 그렇게도 이질적이고 카오스적이다. 이를 두고 서구인들은 야만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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