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수 씨

2008년말 천재수씨는 인천에 위치한 모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사장을 비롯해 직원 모두가 성실히 일한 덕에 건실한 구조를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경기불황과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이어지며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직원들이 하나 둘씩 감원됐다. 그리고 천재수씨에게도 그 순간이 왔다.

사장은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복직을 시켜줄테니 6개월만 쉬고 있으라 했다. 하지만 1년이 다 돼가도 사장의 연락은 없었다. 그러던 차 숙련공인 그를 아까워하던 한 지인이 그를 자신의 공장에 불렀다. 그렇게 찾은 공장에서 그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기계 오작동에 산재입어

 

지인의 공장은 석유난로, 전기난로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이곳에서 그가 맡은 일은 난로에 들어가는 부품인 철망을 프레스로 찍어내는 일이었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긴 했으나 그저 프레스에 철망을 넣고 구멍을 내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쉬운 일이었기에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냈다. 그렇게 두어 달 가까이를 일하던 중 그는 기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프레스의 작동 속도를 조절하는 부품의 체결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이를 관리자에게 보고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고 있다’와 ‘다음에 고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알아서 하겠거니’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한달여가 지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는 맡은 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 철망을 기계에 넣고 빼던 일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의 손이 기계 안에서 채 빠져나오기 전에 프레스가 작동을 하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오른손의 손가락 대부분이 짓뭉게졌다.

손가락 두 개만 남은 오른손

일년여간 2번의 수술이 이어졌으나 그의 손가락 모두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뼈가 조각조각이 나는 등 상처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는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을 살릴 수 있었다.

오른손에 손가락이 두 개만 있는 기계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앞날이 캄캄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의욕이 조금씩 솟아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인천산재병원에서 배운 도자기 공예가 큰 힘이 됐다. 공예를 하며 불편하기만 했던 손의 기능이 많이 향상되고,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현재 그는 굳은 각오를 다지고 새로운 일을 얻기 위한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

뒤늦은 공장의 변화

최근 천재수씨는 반가운 소식을 하나 들었다. 그가 계기가 되어 회사의 모든 위험 기계·기구에 안전장치가 설치되고,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안전교육도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은 다쳤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는 근로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천재수씨는 “만약 그 공장이 내 말을 듣고 미리 예방에 나섰더라면 이런 사고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부디 올해는 근로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전에 안전조치에 나서는 능동적인 사업장이 늘어나 나와 같은 산재근로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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