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공정 진행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재해에 대한 관대한 행정처분이 안전관리 소홀 야기
산업안전보건 친화적인 원·하청 도급계약 체결 의무화 필요

지난 4월 2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공청회’ 모습.
지난 4월 2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공청회’ 모습.
(이미지 제공 : 뉴시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가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사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업 중대재해 발생 양상에는 크게 3가지 특징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사망사고가 하청근로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업무상사고 사망자수는 총 324명이다. 이중 원청 소속 사고사망자수는 66명인데 비해 하청(사내협력사) 소속 사고사망자수는 257명에 달한다. 비율로 보면, 하청근로자의 사망비율은 79.3%, 원청근로자의 사망비율은 20.4%, 기타 0.3% 순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몇몇 재해유형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재해유형 1위는 ‘떨어짐(추락)’으로 나타났다. 떨어짐이 다발한 이유는 조선소의 업무특징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선박이나 해양플랜트는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락에 이어서 많은 비율을 차지한 재해유형은 ‘넘어짐(전도)’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재해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이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정부당국의 행정처분은 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과태료 금액도 1건당 126만원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정부에 의한 조선업 과태료 처분 건수는 2006건이었으며 과태료 전체 금액은 총 25억2000만원이었다.

◇하청단계 늘어날수록 안전보건시스템 제역할 못해
조사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선업 중대재해 발생의 근간에는 안전부서와 생산부서의 가치관 차이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 원청의 안전보건(HSE)부서에서는 원청과 하청을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안전문제를 가장 중시했다. 하지만 원청의 생산담당 부서에서는 생산성과 비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박납기일 준수’를 가장 중요시했다. 그 결과 생산부서의 작업공정 재촉과 원하청 관계가 중첩되면서 ‘무리한 작업공정 진행 → 재해발생 위험 증가’라는 재해발생 매커니즘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커졌다.

여기에 더해 사내협력업체들의 전반적인 관리운영 실태를 확인한 결과, 생산관리 뿐 아니라 인사노무관리 수준도 매우 열악했다. 특히 하청단계가 늘어날수록 기존 산업안전보건시스템 자체가 유명무실화되거나 의사소통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여 재해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형태도 안전보건관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조선업의 경우 경기변동에 민감한 산업의 특성상 물량변동에 따라 비정규직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조선업 비정규직·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자주 현장을 옮겨 다닌다.

즉, 사내협력업체들의 ‘낮은 관리수준’과 노동자들의 ‘잦은 이동’이 결합되면서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설비에 대한 숙련도가 떨어지고 안전교육 효과도 낮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1차 하청보다는 2~3차 하청으로 갈수록 숙련수준이 저하되고 있으며, 단기 물량팀에서는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조사위는 이같은 전반적인 조선업 원하청관계와 고용관계에 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안전을 위배하는 무리한 공정 진행 ▲안전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재하도급의 확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이 불명확 ▲과도한 하청노동자의 증가 등을 사고의 근원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조사위원회는 조선업 사망사고를 보다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 근원적인 원인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은 ‘계약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돼
위원회는 산업재해의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방향의 초점이 ‘가장 효율적인 산업재해예방기능의 구현’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이 구현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안전에 관한 한 ‘계약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약 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의 차원에서 벗어나, 산업재해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찾고,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자가 산업안전에 관한 권한과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위원회는 다단계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업에서 재하도급을 받은 재수급인은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책임질 수 없는 만큼 재하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 가입, 원청이 인정하는 직업경력수첩 등 고용계약관계의 공식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조선업의 특성상 노무도급이 아닌 물량도급 형태의 재하도급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전문화된 업체를 활용하는 재하도급에 대해선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무리한 공정 진행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리한 공정진행은 과도한 노동강도(장시간 노동)를 유발하고, 혼재작업을 하게 하고, 업체 간 또는 작업자 간의 정보공유나 소통부재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 조사위의 설명이다. 

위원회는 ‘무리한 공정진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내업체들 간의 과잉경쟁, 저가수주를 자제시키고 원청의 종합적 생산관리, 안전관리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에서 표준 공사기간을 설정하고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설정한 표준공사기간 대비 과도한 변경이 있는 경우, 관련조직 및 하청업체와의 사전 협의, 조정,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안전작업을 고려한 안전설계 체제도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의 입장이다. 도면에 안전설계 관련 요소를 포함하고, 생산 현장의 안전관련 제안을 제도화하며 건의, 요청사항을 설계도면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한 공정진행을 방지하기 위해 동일한 공간 내에서 원·하청 근로자가 혼재하여 작업할 경우, 원청에 작업 순서 등에 대한 조정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조선업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세 번째 방안은 조선업 안전관리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하청에 대한 원청의 안전감독 및 보호의무 강화 ▲하청업체의 산업안전보건 역량 강화 지원 ▲하청 근로자의 산업안전보건역량 강화 ▲‘산업안전보건 친화적’ 원하청 도급계약 체결 의무화 등을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 시행령 등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원·하청 고용시스템 개선 필요
고용구조가 산업재해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위원회는 조선업의 고용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먼저 사내하도급 업체를 활용한다고 할지라도 이들 업체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원청과 사내협력사 간 작성되는 표준계약서에는 추가적인 단가인하 금지 및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부당한 업무를 하청업체에게 추가적으로 지시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현장에서는 일을 먼저 지시하고, 일을 마칠 무렵 계약하는 이른 바 ‘후계약관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당한 계약관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1차 협력업체가 정상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렵고 스스로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1차 협력업체의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고 이때 근로자들의 임금 및 안전관리비용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위원회는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관리 및 안전의 균형을 위해서는 원청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생산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전했다. 업무진단을 통해 사고가 빈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핵심적인 업무는 숙련된 원청 정규직이 담당하는 것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위원회는 조선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및 숙련인력 양성, 안전관리를 위한 방안으로 조선기능인 자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용접, 배관, 도장 등 기능등급을 구분하고 숙련에 따라 임금제도를 달리 설계하고, 이를 조선해양협회, 노동조합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조선업 현장에 숙련 및 풍부한 경험과 기량을 갖춘 기능 인력이 배치될 경우 중대재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노·사·민·정 모두의 노력 필요
위원회는 조선업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는 별도 기구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장.단기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리고 별도 기구에는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위원들 외에도 노사단체가 참여하여 수용성과 실행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선업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법령 개정 연구를 추가로 진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우리와 산업구조, 노동시장이 비슷한 일본의 노동안전위생법(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처럼 산업안전보건법에 조선업을 별도의 절로 구분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노동안전위생규칙의 특별규정’처럼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도 건설, 조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원청사업주에 관한 특별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조선업 전반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형식이 아닌 조선업 사용자 단체(협력업체 포함)와 노동자 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전문가와 정부, 안전보건공단이 참가하여 조선업의 안전문제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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