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법 “명확성, 과잉금지, 평등원칙 위반 아니다” 판결

이미지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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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전국에서 처음 기소된 두성산업의 대표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3일 창원지법 형사4단독 강희경 부장판사는 유해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근로자 16명에게 독성간염 증상을 발생시킨 혐의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두성산업 법인에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A씨에게 사회봉사 320시간도 명령했다.

이날 판결이 또 다른 주목을 받은 이유는 A씨와 법인의 변호인단(이하 A씨 변호인단)이 법원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는 점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으로, 만약 법원이 이를 수용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위헌논란이 더욱 불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원지법은 이날 두성산업과 A씨에 대한 판결에 앞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이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노동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성명자료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명권은 헌법에 명시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라며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을 헌법의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판결”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주노총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소모적인 위헌시비는 이제부터 중단되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법의 취지를 살려 현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안착시키고, 현장을 안전하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나가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먼저 A씨 변호인단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헌법에서 정한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 등에 어긋난다고 봤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사항이 명확하지 않고, 타법에 비해 처벌수준이 높아 과잉금지 및 평등의 원칙과 관련해 위헌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 창원지법 강희경 판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상식·통상적으로 알 수 있다면 ‘명확성 원칙’ 위배 아냐”

먼저 A씨 변호인단은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및 제1호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조항을 문제삼았다. 이들 조항의 개념이 광범위하고 불명확하여 예측 가능성이 없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강희경 판사는 판결문에서 “법의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하고 일반적·규범적 개념이 사용되었더라도, 그 점만으로 헌법이 요구하는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 법적용 대상자와 구체적 의무 등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의미로 강희경 판사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계약의 형식이나 그 명의와는 무관하게 하나의 사업 목적 하에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의 조직·인력·예산 등에 대한 결정을 총괄하여 행사하는 경우’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 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에 대해서는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위험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하는 등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개선·유지하는 일련의 관리 또는 경영체계를 마련·시행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활동’으로 인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특히 안전보건관리 체계에 대해서는 시행령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명확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희경 판사는 “각 기업은 사업장의 규모, 업종별 특성, 작업의 내용, 산업기술의 발전상황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유해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어, 요구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유해위험요인을 통제하는 수단이나 방법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이를 일률적·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개별기업들의 특수성 등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여 판결했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과잉금지 원칙에 부합

A씨 등의 변호인단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하도록 한 법 제6조 제2항의 규정도 문제삼았다. 과도한 법정형을 규정하면서 피고인들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의 상실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창원지법 강희경 판사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또는 상당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전제한 후 판결했다.

강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가 기업 내의 부실한 안전관리체계,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 제도적·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 하에,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됐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방법의 적정성·상당성에 대해서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에 대한 이들의 고의가 요구되는데, 해당 조항(제6조 제2항)은 의무의 내용을 정확히 예측·파악할 수 있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의무를 고의로 위반하고, 그로 인해 중대한 산업재해가 야기된 경우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이에 해당 조항이 피고인들의 직업수행 자유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방법 내지 수단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 요건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덧붙여 강 판사는 “해당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은 기업 내의 부실한 안전관리체계,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 제도적·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여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함으로써 근로자 등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에 있다”며 “따라서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에 있어 국가작용의 한계를 명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종합해보면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조항이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또는 상당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느 하나도 위배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법정형의 높고 낮음은 입법재량권 문제, 헌법위반 문제 아냐”

A씨 변호인단은 중대재해처벌법 처벌규정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도 위반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 논거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꼽았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는 중앙선 침범, 무면허·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망의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단순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의 죄질이 중앙선 침범이나 무면허·음주운전 등보다 가벼운 경우가 많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 제2항은 의무 위반으로 사고 발생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것으로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A씨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법정형의 높고 낮음은 입법재량권에 따른 사항으로 헌법위반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결하며 해당 신청을 기각했다.

강 판사는 “법정형의 종류·범위의 선택은 범죄의 죄질과 보호법익에 대한 고려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 또는 법감정,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 측면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전제했다.

강 판사는 “△죄질과 행위자의 책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 △현저히 균형을 잃어 평등의 원리에 어긋난 경우 △형벌 본래의 기능과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경우 등과 같이 입법재량권이 헌법에 반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만 않았다면, 법정형의 높고 낮음은 입법정책의 당부의 문제이지 헌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강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에 관한 고의가 요구된다”며 “이에 반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 등 교통사고로 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한 것으로 과실범을 그 처벌대상으로 한다”고 중대재해처벌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직접적인 비교도 인정하지 않았다.

◇‘위헌논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창원지법 강희경 판사는 A씨 변호인단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위와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논란에 대한 법원의 최초 판결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일단 이 판결로 중대재해처벌법에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다소 잠잠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논란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와 제69조에 따라 위험법률심판제청 신청이 기각될 경우 신청을 한 당사자는 결정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헌법재판소로 직접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여 헌재의 판결을 받아볼 수 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어 판결을 앞두고 있는 모 기업도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여부를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확대 적용과 관련해, 중처법의 위헌을 논하는 기업들도 앞으로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법 제정 당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논란이 어떤 결론을 낼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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