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파스퇴르연구소 울프네바스(Ulf Nehrbass) 소장

우리나라 최초로 허가받은 생물안전 3등급 시설 운영
생명과학연구에 있어 세계 최초의 중개연구기관


파스퇴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보통 우유, 분유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생명과학 연구기관으로써의 명성이 앞선다.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 박사 주도로 1887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는 그동안 광견병 백신 최초 개발, AIDS바이러스 최초 발견 등 뛰어난 연구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러한 성과 아래 그동안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Institut Pasteur Korea)는 26개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32개 국제 파스퇴르네트워크 중 하나로, 프랑스 파스퇴르(Institut Pastuer)와 한국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협력을 기반으로 2004년 설립된 순수한 국내 신약 개발 연구기관이다. 120여년간 쌓아온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BT분야 노하우와 한국의 첨단 IT기술이 융합되어 탄생한 것이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인 것이다.

이 연구소는 신약개발 전체 과정 중 매우 특정한 부분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결핵, 간염, 암, 염증, 인플루엔자 등의 감염성 질환과 만성질환, 그리고 레쉬마니아, 샤가스병 등의 소외 질환 분야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여, 이들 분야의 기초연구 성과를 산업계의 신약개발로 연계하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를 수행한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 한국, 프랑스, 독일, 브라질, 캐나다, 덴마크, 스웨덴, 카메룬 등 12개국의 130명(외국인 21명)의 연구원과 28명의 행정인력 등 약 160여명이 투입되고 있다.

중개연구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며, 이 중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최초라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최첨단 기술과 신약개발 연구플랫폼이 갖춰져 있다.

이를 통해 이곳은 세계 생명과학 및 연구분야에 있어 선도적인 기관으로써의 입지를 꾸준히 다져나가고 있다.

선진국형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는 중개연구를 중심으로 신약개발기술, 기초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질병 및 감염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실험 중 감염사고의 위험성이 매우 크다. 또한 신약 개발을 위한 많은 화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폭발 및 화재 등의 사고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많은 위험요소 속에 이곳의 안전관리는 세계적으로 최상급에 속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얻어진 안전관리 노하우와 안전시스템을 우리나라 연구환경에 맞게끔 최적화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안전등급에 있어 3등급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이곳의 안전문화를 잘 설명해준다.

생물안전 분야를 다루는 연구시설에는 위험도에 따른 생물안전등급이 있다. 1등급은 세포와 같은 위험이 거의 없는 물질을 연구하는 시설이며, 2등급 시설은 간염, 인플루엔자, 말라리아 등 감염 가능성이 있으나 쉽게 치료되는 물질을 연구하는 시설이다. 3등급 시설은 결핵이나 AIDS 같이 감염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병원체까지 안전하게 연구하기 위해 특수 설계된 시설이며, 4등급은 유포 시 다수의 사람들이 숨질 수도 있는 SARS, 에볼라 등의 테러 가능 병원체를 연구하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등급 시설은 아직까지 없는 가운데,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국가에서 허가받은 3등급 시설을 처음으로 구축·운영했다. 이는 이곳 연구소의 안전보건을 확보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연구실 안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들 3등급 시설은 법에 정해진 음압, 밀폐등급 등에 대해 교과부 또는 질병관리본부의 세심한 관리를 받는다. 또 매년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하면서 시설 및 장비 측면의 안전성도 철저히 검증한다.

연구실안전관리의 전환점 마련

이외에도 이곳은 연구자의 안전보건을 위해 안전시설, 안전장비, 안전보호구, 안전규정 등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철저를 기하고 있다.

또 시설팀을 별도로 조직·운영하고 대한산업안전협회 등의 전문기관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면서, 화재 및 폭발사고와 관련해서도 최선의 사전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이곳 연구소의 안전팀은 생물, 화학 등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에서 오랜 연구생활을 해온 후 생물안전관리자 자격증, 방사선안전취급자 자격증 등을 갖춘 석·박사급 연구원들이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곳은 연구환경에 맞는 최적의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고,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연구실안전 분야의 새장을 열어나가고 있다. 이곳의 선진국형 안전관리가 우리나라 여타 연구실에 그 파급력을 차츰 높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곳의 안전문화가 우리나라 연구실안전 분야의 발전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구실 안전의 선도적인 기관으로 자리매김 할 것

 


Q.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처음 접하셨을 때의 느낌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 부임한 것은 지난 2004년 봄이었습니다. 부임 후 한국의 안전문화에 대한 첫 느낌은 ‘진행 중(work in progress)’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과학계나 정책결정자가 안전시스템을 가볍게 다루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수의 안전분야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열띤 논의와 세심한 검토를 거듭한 끝에 우리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한국 최초로 국가에서 허가받은 생물안전 3등급 시설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안전시스템과 관련되어 규정된 의사결정 및 행정절차는 제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겪었던 사례들과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매우 유사했다고 생각합니다.

Q. 연구소 운영에 있어 안전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중인 독특한 연구기법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살아있는 세포에 질병을 투입하여 질병이 세포 내에서 성장·분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염성을 가진 병원균이 인체 내에서 일으키는 감염반응과 동일한 기작을 인체 밖에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용량의 스케일이 아닌 매주 25,000개, 월 100,000개의 대용량 스케일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이러한 독특한 연구기법에 맞는 안전문화를 한국의 안전제도와 규정에 준해 한 단계씩 발전시켜왔습니다. 완벽하고 철저한 안전시스템이 전제가 되어야만,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첨단 연구가 안전하고 효율적인 신약개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에 이러한 안전시스템의 정립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한국의 연구소안전시스템의 개척자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한국파스퇴르연구소만의 안전관리 노하우를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연구소만의 안전관리 노하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생물안전 3등급 시스템(BSL3)과 첨단 약효탐색기술플랫폼(HTS/HCS Platform)이 바로 그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연구소는 감염성병원균을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생물안전 3등급 시설을 구축·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 속에서 연구원들은 연구소 고유의 첨단 약효탐색기술플랫폼을 이용해 매년 100,000개 이상의 화합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로봇 공학의 도입으로 완전자동화된 이 플랫폼은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종합해보면 우리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안전이 보장된 최적의 업무환경 속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연구소 전체의 안전성은 물론 연구성과도 동시에 높여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첨단시스템이 바로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안전관리의 품질보증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Q. 지금까지 구축한 안전시스템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염성이 강한 병원균을 인체와 유사한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는 위험하지만 진보적인 연구컨셉이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경쟁력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연구컨셉에 맞게끔 안전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세계적인 신약개발 중개연구소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확하고 세부적인 안전관리가 지금의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발전의 한 축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물안전 3등급 시설과 같은 새로운 안전시스템이 한국에 도입되는데 큰 기여를 하는 등 국내안전관리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의 안전관리를 기반으로 연구기술과 관련시스템을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연구소 운영의 모범이 되는 기관으로써 역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Q. 선진국과 우리나라 안전시스템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연구소의 경우 안전시스템 정립초기에 미국국립보건원(NIH) 및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등 선진 연구소의 올바른 벤치마킹 대상을 선택하는데 있어 내부적으로 다소 혼선을 겪은 바 있습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정책과 규정 등이 갑자기 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혼선은 안전문화 정립초기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규정된 의사결정 및 행정절차에 따라 안전관련 이슈들이 처리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선진국과의 차이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우리나라 연구·실험실 안전과 관련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전관련 이슈는 경영자 및 임직원들의 사고방식에 의해 최우선으로 다뤄져야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에는 안전사고가 일어난 후에야 안전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안전이슈가 공식적으로 가장 중요한 안건이 되고, 안전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전 직원들에게 공유되기 위해서는 일상 업무과정에서 안전담당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경우 안전팀장이 연구프로젝트를 지연 또는 심지어 중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안전과 관련해서는 의사결정의 최상위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와 더불어 안전담당자들의 훌륭한 자질과 전문적 지식,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우 역시 필수적입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충족 될 때 안전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고취되고 효과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립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Q.비용적인 부담이 첨단 안전시스템 도입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형 안전사고 뿐 아니라 화학물질과 병원균 등에 의한 사고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연구소의 업무 중에서 소소한 부분까지 항상 안전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비용적인 투자도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경우 많은 금액을 투자하여 생물안전 3등급 시스템(BSL3)을 구축했으며, 이를 통해 임직원들의 안전문화를 정립하고 일상적인 업무환경에서 안전의식 고취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첨단 안전시스템 도입은 투자비용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영자와 임직원의 사고방식과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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